[챕터3] 안성만
어두운 공간 안으로 들어서면, 종유석을 닮은 안성만의 도자 작품과 이종수와 협업해 만든 영상 작업이 함께 펼쳐집니다. 안성만은 도자의 물질적 감각과 디지털 제작 기술이 만나는 지점을 탐구합니다. 작가에게 세라믹 3D 프린터는 완벽한 형태를 만드는 기계가 아니라, 흙의 성질과 변화를 드러내는 또 하나의 도구입니다. 노즐에서 나온 백자토는 가느다란 선으로 층층이 쌓이지만, 수분과 압력, 중력에 반응하며 조금씩 처지고 어긋납니다. 여기에 불과 유약이 더해지면 수축하고 갈라지며 처음의 설계와는 다른 표면이 만들어집니다.
《흙의 흔적》은 오랜 시간에 걸쳐 만들어지는 석회암 동굴의 생성 과정에서 출발했습니다. 주변의 도자 형태를 살펴보세요. 종유석과 석순이 물방울과 광물이 쌓이며 조금씩 자라나듯, 이 작품도 가느다란 흙의 선이 반복해서 쌓이며 형태를 얻습니다. 자연에서 수천, 수만 년에 걸쳐 이루어지는 과정을 디지털 제작을 통해 짧은 시간 안에 압축한 것입니다.
함께 보이는 이종수의 《45일》은 안성만의 작업에서 나타나는 반복과 축적, 변화의 원리를 영상으로 확장한 작품입니다. 완성된 영상을 반복 재생하는 것이 아니라, 전시가 열리는 45일 동안 계속 변화합니다. 관람객의 수와 움직임, 시간대와 날씨 같은 정보가 실시간으로 반영되면서 화면은 계속 달라지고, 이전의 상태 위에 새로운 변화가 쌓입니다. 관람객 역시 작품의 변화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오늘 마주한 화면은 내일이면 또 다른 모습이 됩니다.
안성만의 도자는 흙과 중력, 불에 따라 달라지고, 《45일》의 이미지는 사람과 날씨, 시간과 데이터에 따라 달라집니다. 두 작업 모두 처음부터 완성된 형태를 정해두기보다, 서로 다른 조건들이 개입하고 시간이 흐르면서 계속 변화합니다. 흙이 층층이 쌓인 흔적과 끊임없이 변화하는 화면을 함께 살펴보세요. 이곳에서는 사람과 기계, 물질과 시간이 함께 형태를 만들어가는 과정을 만날 수 있습니다.


